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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축구리그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수는 차범근, 박지성, 손흥민 선수가 대표적이다. 1970년대 1980년대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에서 갈색 폭격기라는 애칭으로 총 98골을 넣은 살아있는 한국 축구의 레전드이고 박지성 선수는 네덜란드 프로축구 리그를 거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세 개의 폐를 가진 사나이로 불리며 명감독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최적화된 선수로 왕성한 활동량을 보여준 또 한 명의 리빙 레전드이다. 박지성 선수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맹활약을 하고 있는 동안 또 한명의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축구 스타가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는데 2010년 10월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SV에서 1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데뷔전에 데뷔골을 넣은 손..
한국 축구의 10년 이상을 거뜬히 책임질 수 있는 또 한 명의 스타는 스페인 프로축구 프리메라리가 1부 리그 RCD 마요르카에서 뛰고 있는 막내형 이강인 선수이다. 2007년 7살 때 KBS 예능 프로그램인 '날아라 슛돌이' 3기 멤버로 지금은 고인이 되신 유상철 감독 지도하에 뛰어난 개인기와 강력한 슈팅을 선보이며 시청자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이강인 선수 프로필 이름 이강인 생년월일 2001년 2월 19일(22세) 신체조건 173Cm / 68Kg / A형 포지션 공격형 미드필더 / 윙어 주 사용발 왼발 등번호 RCD 마요르카 19번 유스클럽 인천 유나이티드 U-12(2008~2010), 플라잉스 FC(2011), 발렌시아 CF(2011~2017) 프로클럽 발렌시아 CF 메스타야(20..
1930년 우루과이에서 제1회 월드컵 축구 대회가 개최되어 우루과이가 초대 우승팀이 되었고 준우승은 아르헨티나가 차지했고 3위는 미국이 4위는 유고슬라비아가 그 뒤를 이었다. 월드컵 초기에는 각 나라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시행착오가 많았고 그에 따른 월드컵 불참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등 매우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제2회 월드컵 축구대회는 유럽 대륙인 이탈리아에서 개최되었는데 참가한 16개국 나라가 조별 예선리그 없이 지면 바로 귀국해야 하는 토너먼트로 진행되어 매 경기가 결승전처럼 치러졌다. 우승은 주최국인 이탈리아가 준우승은 체코슬로바키아, 3위는 독일, 4위는 오스트리아가 차지하며 유럽 대륙 국가들이 독차지한 대회였다. 제3회 월드컵 축구대회는 프랑스에서 개최되었다. 아시아권 국가가 최초로 참가하긴 했는..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이 7개월간의 대장정을 끝냈다. A조에서는 한국이 아시아 랭킹 1위인 이란을 비롯해서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 등 중동 국가 5팀에 둘러싸여 험난한 여정이 예상이 되었으나 예상을 깨고 탄탄한 점유율 축구를 바탕으로 이전 월드컵 예선에서와는 다르게 수월하게 본선에 안착했다. 최종전인 아랍에미리트와의 원정경기에서 어쉽게 1대 0으로 패하면서 이란을 제치고 무패 조 1위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이란에 이어 조 2위로 최종 예선을 끝냈다.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 외국 국적의 감독으로는 파울로 벤투 감독이 2018년 8월부터 현재까지 가장 오랜기간동안 대표팀을 이끌어오고 있다. 햇수로 4년여 동안 고집스럽게 파울로 벤투 감독 자신의 축구 철학과 색깔을 대한민..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로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10회 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뤄냈다. 1954년 대한민국 월드컵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대회 사상 첫 출전에서 헝가리, 서독(현 독일), 터키와 함께 2조에 편성이 되어 조별 예선리그를 치렀다. 625 전쟁이 끝난 지 1년여밖에 안 됐기 때문에 당시 축구 대표팀에 경제적 지원이 거의 전무했고 스위스로 도착하기까지 험난한 여정이었다. 월드컵 개막 이틀 전에 도착해서 제대로 경기에 대한 준비도 못한 채 당시 최강국이었던 헝가리 대표팀에 9대 0이라는 큰 점수차로 대패했고 터키 대표팀에게는 7대 0으로 대패하면서 쓸쓸히 귀국길에 올랐다. 아시아를 대표해서 참가한 첫 월드컵 대회였지만 세계와의 크나..
지금은 초등학교라고 불리지만 1970년대 후반엔 명칭이 국민학교였던 5학년 때 인걸로 기억된다. 그 때 당시에는 지금처럼 출산율이 저조하지 않아 학급마다 꽤 많은 학생수가 있었다. 한 반에 내 기억으로는 거의 50여 명 정도의 학생이 2인용 책상에 따닥따닥 붙어서 수업을 들었으니 얼마나 많았는지 그때 당시 코로나 19가 발생했다면 아찔한 생각이 들 정도이다. 게다가 한 학년당 13반 정도가 있었으니까 가을 운동회라도 할라치면 대규모 지역 행사 정도급이었다.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이 북적북적거리니 반을 더 이상 증설할 수있는 여력이 없었고 그래서 나온 대안책이 오전 오후 2부제 수업이었고 오전까지 실컷자고 오후에 수업 들으러 간 옛 추억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학교장 선생님의 재량이었는지 교육부 방..